025년 봄, 온라인에서 하나의 대유행이 있었다.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이용해 자기 프로필 사진을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 풍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지브리하면 가령, 아픈 엄마를 보러 가려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도토리 전령(이웃집 토토로, 1988년작)을 떠올릴 수 있다. 또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서 소박한 삶으로 다시 돌아온 도시인(추억 방울방울, 1991년작), 그리고 세상을 파멸시키려 한 탐욕덩어리 인간 대신 차라리 돼지로 살겠다는 전설의 전직 조종사(붉은 돼지, 1992년작)의 이야기는 어떤가? 이런 스토리를 통해 사랑, 애수, 그리고 추억을 그려온 지브리의 정겨운 그림처럼 ‘세상에나’, 내 가족들의 모습을 지브리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감성을 담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원작 그림과, 그것을 정교하게 흉내내서 그린 생성형 AI의 그림은 과연 같은 것일까? 이렇게, 그림이나 음악처럼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창의’, ‘창작’의 영역에서 AI가 활약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컴퓨터가 마치 인간처럼 과연 창의적이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우리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래 컴퓨터가 대신해 주겠지라는 희망을 가진다. 컴퓨터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 같은 느낌과 나의 일자리를 뺏아갈 것 같은 공포감을 동시에 앉고 살아가고 있다.
점점 “사람 같은 기계”는 도대체 언제 생겨난 것일까? 잠깐 그리스 신화로 돌아 가보자.
헤파이스토스 신(神)의 드론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의 일리아스(Il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에는 ‘내재된 에너지로부터 힘을 얻어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를 뜻하는 ‘오토마톤(Automaton)’이 종종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일리아스에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estus)가 만든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 있다. 이 문은 어떻게 스스로 열리고 닫히게 된 것일까? 호메로스는 올림푸스 신들의 신인 제우스의 누이이자 부인인 헤라의 명령에 따라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이렇게,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신만이 가진 능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곧이어 헤파이스토스의 공작실(대장간)을 엿보게 되면서 그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헤파이스토스는 황금색 바퀴가 달린 삼각대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 삼각대들의 정체는 창조주 헤파이스토스의 지시에 따라 올림푸스 신전에 모임에 자동으로 굴러 드나들며 신들의 시중을 드는, 자율주행 지상 드론이었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헤파이스토스가 더 이상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땀흘리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시키기만 하면 만들어주는 만능 자동 기계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신이 아닌 인간도 지식과 손재주(즉, 과학과 기술)가 충분히 발전한다면 이런 기계를 만들어내는 ‘신-기술자(god-technologist)’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이 순간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며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시키는 대로 할 줄 아는 자동기계에게 생명을 주는 신과 같은 능력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 손에는 아담과 하와가 전해준 지혜의 열매를, 다른 손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을 쥐고 있던 인류가 한 단계 더 절대적인 존재로 도약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아킬레우스에게 투구를 건네는 그리스 신화 속 불꽃, 화산, 그리고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사진 | Bibi Saint-Pol 사람을 완벽히 따라하는 기계
호메로스의 오토마톤 이야기 이후 무려 2600년의 시간이 지난 1950년, 영국의 과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라는 논문에서 인간 같은 지능을 갖춘 기계에 대한 획기적인 구상을 밝힌다. 튜링은 미국의 주도로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비밀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맹활약한 전기계산기(컴퓨터)의 기본 구조를 고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종전 5년만에 “이제 +-⨉÷의 사칙연산에서는 인간을 초월한 컴퓨터에게 사람처럼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튜링은 이를 위해서는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를 먼저 대답해야 한다면서, ‘튜링 테스트'(당시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 불렀다)의 개념을 제안한다. 이 게임에서는 글로만 소통할 수 있도록 바깥에서 격리된(당시엔 사람처럼 말하는 기계가 없었으므로) 두 방 안에 사람과 컴퓨터를 넣은 다음 공통 질문지를 건넨다. 그리고 각각 보내온 답안지를 보고 나서 어느 쪽이 사람인지,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심판(사람)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한다. 그리고 만약 이 심판이 사람과 컴퓨터의 답안을 구별할 수 없다면 튜링은 ‘컴퓨터가 사람과 같아졌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메로스가 ‘신이 아닌 인간도 오토마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면, 긴 시간이 흐른 뒤 튜링은 ‘완벽한 오토마톤은 인간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단언한 것이었다.
앨런 튜링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컴퓨터가 사람과 같아졌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Elliott & Fry 창의성, 그리고 인간의 가치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와 근대의 앨런 튜링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우리 인간은 헤파이스토스처럼 모두 자신만의 ‘공작실’에서 새로운 장비나, 아름다운 그림, 가슴이 두근거리는 연애편지, 회사 프로젝트를 위한 솔루션 등 언제나 욕망하는 것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기존은 튜링의 말한 것처럼 ‘사람’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곧 ‘인간의 능력마저 초월한’ AI가 등장하여, 인간의 모든 창작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실패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과실만 따먹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을 완벽히 정복하는 것이고, 1940년대 사칙연산을 정복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를 상상하기 이전에, 기계의 지능이라는 것을 먼저 정의해야 했던 튜링처럼 우리도 먼저 인간 창의성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학교나 회사에서도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창의성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 정의가 무엇이냐를 물어보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 이상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정말 알 듯 말 듯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상 제일 창의적인 회사 중의 하나를 만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을 되새겨보자.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사물들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창의적인 일을 한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면 그저 연결들이 눈에 보였을 뿐이라면서 대단치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기까지 한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물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찾는 것이 창의성과 완전히 똑같다면 사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이다. 얼마나 쉬울지 짐작하기 위해, 세상에 사물이 단 열 개가 있다고만 가정해보자(실제보다 아주아주 단순한 세상이다). 열 개에 지나지 않는 적은 사물들이지만 이것들을 연결하는 가짓수는 무려, 245개, 즉 약 35조 가지에 달한다. 실제 세상의 사물은 10개 보다 훨씬 많은 수로 이뤄져 있기에 “나만이 처음 보는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잡스는 이어서 “그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연결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라고 부언했다.
즉, 수많은 연결 가운데에서도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가진 연결은 인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당장 방구석에서 돌아다니는 물건들을 무작위로 모아서 서로 붙인다고 창의적인 연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진정한 창의적인 연결은 ‘사람이 갖고 있는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경험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진 | Matthew Yohe 창의성은 인간의 부름에만 답한다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의 말을 만들어내는 챗GPT를 보고 있으니,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기계가 이제 탄생한게 아닌 가 말하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 그림이면 그림, 음악이면 음악, 코딩이면 코딩을 쉼없이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생성형 AI의 가능성에 고무되어 있거나, 혹은 실망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을 일구어 온 위대한 과학기술이나 예술 분야에서의 ‘창의적 연결 찾기’라는 업적에 견줄만한 것을 아직 “생성”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을 연결한 상대성이론을 통해 우주의 이해를 바꿔버리고, 원자시계와 GPS의 탄생에 기여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자연의 모습 그대로’와 ‘캔버스’를 연결하는 인상주의 화풍을 만들어 내 아름다움의 정의를 바꿔버리고 전세계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는 화가인 클로드 모네의 혁신들은 ‘과거’를 벗어난 것들이다. 과연 인간의 ‘과거’의 기록일 뿐인 데이터를 통해 배운 생성형 AI가 진정한 인간과 같은 창의성을 가질 수 있을까?
창의성에 대한 잡스의 말이 옳다면,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AI에게 사람의 ‘과거’를 대표할 뿐인 데이터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의 경험’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아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서, 인간과 AI가 함께 하는 방법에 대해서 절대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생성형 AI 기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더 나아가 생성형 AI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 그리고 우리와 함께 창의의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살펴야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이길 바라는 우리 인간이 기계들에게 의탁되지 않고 더 현명해 질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 과학자·문화물리학자인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한국고등과학원 방문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복잡계 네트워크를 문화와 예술 영역에 적용해,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의 협업·영향 관계 등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또한 생성형 AI와 저작권·법제도 분야 융합연구 프로젝트를 이끌며, 문화 기술 혁신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2024>이 있으며, EBS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원리’ 등 다양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AI 이후 시대의 문화·창의성 패러다임을 제시해오고 있다.